소장품 이야기 3. 불교서, 한 권의 경전에서 모두의 책으로
불교의 경전은 단순히 종교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 아닙니다.
시대에 따라 경전을 만들고 기록하며 전하는 방식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보여주는 기록물이기도 합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소장한 세 권의 불교서는 이러한 기록문화의 흐름을 잘 보여줍니다.
고려의 재조대장경 인쇄본(1239년)에서 조선 왕실의 간행본(1489년)
그리고 한글로 번역한 언해본(1558년)에 이르기까지,
세 권의 책에는 불교가 전해지는 방식과 함께 우리 문자문화의 발전 과정이 담겨 있습니다.
1. 국가가 경전을 새기다 - 대반야바라밀다경 권534(大般若波羅蜜多經 卷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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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침공으로 1232년(고종 19) 대구 부인사(符仁寺)에 보관되어 있던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 불타버린 뒤,
고려 조정은 대장경을 다시 새기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을 극복하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불교의 힘을 빌리고자 한 것입니다.
고려는 이를 위해 대장도감(大藏都監)이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남해에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을 두는 한편,
해인사·단속사 등 사찰에서도 대장경판을 새겼습니다.
이렇게 초조대장경에 이어 다시 만든 대장경이 바로 재조대장경(再雕大藏經)이며,
오늘날 ‘팔만대장경’으로 잘 알려진 경판입니다.
재조대장경에는 수많은 불교 경전이 수록되어 있으며, 『대반야바라밀다경』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반야바라밀다경』은 삼장법사로 잘 알려진 현장(玄奘)스님이
여러 불교 경전을 한문으로 번역해 집대성한 총 600권의 방대한 경전입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소장한 『대반야바라밀다경』 권534는 이러한 재조대장경판으로 찍어 낸 경전입니다.
권말에는 ‘기해세고려국대장도감봉칙조조(己亥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라는 간기(刊記)가 남아 있어,
고려 대장도감에서 왕명에 따라 새긴 재조대장경판의 인쇄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권에는 보살이 실천해야 하는 보시바라밀, 즉 ‘베풂의 수행’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처럼 『대반야바라밀다경』 권534는 고려가 국가적인 사업으로 경전을 보존하고
후대에 전하기 위해 제작한 재조대장경의 가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2. 왕실이 경전을 지키다 –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조선은 유학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으며 불교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왕실은 선왕과 왕족의 명복을 빌고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불교 신앙을 이어갔고,
그 과정에서 여러 불교 경전을 꾸준히 간행하였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묘법연화경』입니다.
『묘법연화경』은 본래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로 편찬된 불교 경전으로,
서역 쿠차 왕국 출신의 승려 구마라집(鳩摩羅什)이 한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모든 중생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은 대표적인 대승불교 경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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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소장한 『묘법연화경』은 1489년(성종 20),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월산대군의 부인 승평부부인(昇平府夫人) 박씨가 간행한 경전입니다.
경전 마지막에 수록된 학조 스님의 발문(跋文)에는 월산대군이 세상을 떠난 뒤,
승평부부인 박씨가 백금으로 아미타불상·석가모니불상·약사불상·관세음보살상·지장보살상을 조성하고,
영산회상도·아미타팔대보살도·천수관음도 등 여러 불화를 제작하는 한편
『묘법연화경』, 『육경합부』 등 다양한 불교 경전을 함께 간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발문은 조선 전기 왕실에서 불교 경전을 간행하게 된 배경과 당시의 왕실 불교 신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기록입니다.
이처럼 『묘법연화경』은 조선의 억불정책 속에서도 왕실이 이어온 불교 신앙과 경전 간행의 전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3. 한글이 경전을 읽게 하다 – 불설아미타경(언해)(佛說阿彌陀經(諺解))
조선 초기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세조는 즉위 이후 불교 경전의 간행과 보급에 힘썼습니다.
이를 위해 불교 경전을 간행하고 한글로 번역하는 기관인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였으며,
간경도감에서는 37종의 한문 경전과 함께 9종의 언해 경전을 간행하였습니다.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여러 언해 경전 가운데 하나가 『불설아미타경(언해)』입니다.
이 책은 『불설아미타경』을 한글로 번역한 경전으로,
『불설아미타경』은 아미타불이 머무는 극락정토와 그곳에서 왕생하는 방법,
아미타불의 이름을 부르며 염불할 것을 권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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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소장한 『불설아미타경(언해)』는 1464년(세조 10)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경전을 바탕으로 다시 새겨 간행한 판본입니다.
이 책은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 그리고 주석을 서로 다른 크기의 글자로 구분하여 한 권에 담았습니다.
이를 통해 한문을 모르는 사람도 불교 경전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불설아미타경(언해)』는 한글을 통해 불교 경전의 독자를 넓히고,
더 많은 사람이 불교의 가르침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세 권의 불교서는 시대마다 경전을 만드는 목적과 그것을 읽는 사람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여줍니다.
국가가 남긴 경전은 왕실의 발원 속에서 이어졌고, 마침내 한글을 만나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문자와 기록의 역할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은 세계의 문자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소중한 문자문화유산도 함께 수집·보존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불교서처럼 문자에 담긴 기록과 시대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고,
우리 문자문화의 깊이와 가치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자료제공: 자료관리부